설촌 및 역사 |
연미마을은 오라동의 자연취락마을로, 현재의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동동네, 섯동네, 어우늘, 해산이, 귀아랑으로 이뤄졌던 마을이다. 마을의 설촌은 1670년경 남평문씨가 처음 숭굴왓(숨골왓)에 정착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다양한 성씨의 주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제주고씨가 많이 들어오면서 고씨촌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될 당시만 해도 연미마을의 주민은 약 150여 호, 600여 명으로 제주시 남부촌에서는 가장 큰 마을이었다. 그러나 4.3사건 초토화시기인 1948년 12월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주민들은 인근 마을로 떠나야만 했고 연미마을 집들은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1951년 마을을 재건한다는 행정의 복구명령이 내려지고 사평, 월구 등 아랫마을로 소개를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면서 다시 취락을 이루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미마을에 속하는 어우늘과 해산이 마을은 돌아와서 사는 사람이 없어서 잃어버린 마을이 되어 표지석만 남아 있다. 4.3사건 이전 연미마을에는 주민들의 식수용 봉천수(구릉) 10곳, 생활용 및 우마용 봉천수(못) 8곳, 말방앗간 10곳이 산재할 정도로 비교적 풍족한 마을이었다.
1973년 건설부고시로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인구 증가가 둔화되고 발전도 빠르지 못하여 정체된 마을이었으나 2001년에 개발제한구역이 전면해제 되면서 개발이 속도가 빨라지게 되었다. 이후 다세대, 다가구주택이 많이 건축되면서 유입인구 수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 마을 연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