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소안내
| 오라공립국민학교터
해방 직후 오라리 연미출신 고영중 외 10여 명이 오라리 유지들과 상의한 끝에 오라리 1937번지 연미마을의 토지를 희사받아 건물을 짓고, 1946년 2월 1일 오라공립국민학교 5개 학급으로 개교해 배움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개교 기념으로 마을청년들이 독립운동영화 “자유만세”를 본 따서 극을 만들어 공연하여 주민들이 관람하기도 하였다. 신학문과 민족· 민주교육을 약 3년간에 걸쳐 시행하면서 오라리 학생들의 배움터로 역할을 했었다.
그러던 중 1948년 비운의 4·3을 만나 동네 전체가 불에 탈 당시 오라공립국민학교도 불에 타 사라졌다. 여기에다 당시 근무 중이던 교직원(성명 미상) 3명도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학교는 1948년 12월 6일 폐교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