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점화식

연미 부락 전기점화식 (1971년 4월 6일)
연미 부락 전기점화식 (1971년 4월 6일)

 

연미마을에 전력이 공급되기 전 어두움을 밝혀주는 등불은 석유를 사용하는 등잔불이 고작이었다. 그보다 이전에 사용한 것은 소나무의 송진을 이용한 솔각불이었다. 그러던 중 1971년 4월 6일, 3년만의 공사 끝에 연미마을 각 가정에 전력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제주지역 최초의 전력 공급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4월 21일 제주전기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40kw 발전기를 이용해 당시 제주읍의 일부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1965년 읍면 단위별로 농어촌 전력사업계획에 따라 연동 전력개발추진위원회가 발족되고 1969년에 가옥 내부배선공사가 이루어지고 1970년 4월에 연동의 각 가정에 전력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추세를 감안하여 1969년 2월 3일부터는 연미마을에서도 마을의 발전을 위하여 전력개발을 추진하기로 하고 <연미전기가설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임원은 위원장 고덕진, 총무 오재수, 재무 박정삼, 그 외로 추진위원 15명을 구성하여 본격적으로 사업 추진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체 공사비의 40%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마을에서 부담해야 하는데 당시 마을의 자금 사정은이 녹록치 못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연미마을 주민들은 사업비를 마련하기로 결정하여 마을 자산을 매도 처분하였는데 마을 자산을 매각한 자금은 고작 46만원으로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자산 매각금을 포함한 자체부담금 150만원을 마련하고자 추진위원회는 마을 주민들의 희사금을 받고 청년회 자금까지 사용했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이런 가운데 고향 소식을 들은 연미출신 재일교포들의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재일교포 오진성씨가 30년 만에 고향을 방문한 선물로 거금 30만원을 희사하였고, 재일교포 故 박태형씨께서도 전 745평을 이전해 주셨고, 또 故 문용삼씨 일금 30만원, 故 문태규씨 10만원 등 많은 지원금 덕분에 연미마을의 전기가설은 성공할 수가 있었다. 당시 마을주민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유공자 포상 등 성대하게 전기점화식이 열렸다. 또한 이를 기념하여 마을회관 마당에는 도움을 준 재일교포와 추진위원들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새마을운동

도로포장용 모래 채취작업
도로포장용 모래 채취작업
섯못 북쪽 도로포장 작업
섯못 북쪽 도로포장 작업

새마을 사업이 시작되자 오라동에서는 연미마을이 가장 먼저 도로포장 사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비가 내리면 마을안길이 질퍽거려 다니기에 매우 불편하였다. 그래서 1972년 정부에서 시멘트 지원을 받고 모래와 자갈은 자부담으로 마을안길 포장사업을 시작하였다. 자갈은 밭담의 자갈을 가져다 깔고 모래는 한내(漢川)에서 등짐으로 지어 내고 차량으로 운반해 포장을 하였다. 가까운 한천에 모래가 없어 들렁귀(방선문) 내(川)에서 모래를 채취해 충당하였다.


당시 제주시 관내에서는 새마을 사업으로 마을안길 포장을 해안마을에서 먼저 시작하였는데, 동회장(고찬종)과 유지 몇 분이 해안마을을 방문해 사업과정을 자세히 듣고 포장사업에 참고하였다. 이렇게 마을주민이 힘을 모아 동못에서 회사거리까지 마을안길을 시멘트 포장으로 완료하였다.

마을회관 건립식

연미마을회관 준공식(1996년)
연미마을회관 준공식(1996년)

지금으로부터 약 80~90년 전에 회사거리에 초가 형태의 회사(會舍)집이 있었는데 건축 연도는 모르나 마을에서 협의사항이 있을 때 모여 향회를 하였던 곳이다. 1939년경에는 마을주민들이 뜻을 모아 지금의 마을회관 부지 599평을 마련하고 30평 규모의 석조기와집으로 공회당을 지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공회당에서 학교에 다니지 못한 아이들을 모아 야학을 열어 배움의 장소로도 이용하였다.


이후 1948년에 4·3사건을 만나 공회당과 마을집들이 모두 불태워졌고 마을주민은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마을은 폐허가 되었다. 1951년에 복귀해도 좋다는 행정명령이 내려 마을 복구가 시작되었고 총 57호가 복귀되었다. 당시 보릿고개의 삶에 지친 주민들은 부지는 있으나 회관을 건축할 능력이 없어 건축을 못하던 차에 1975년 재일교포로부터 토지(전)를 기부받아 현재 마을회관 부지에 벽돌조 콘크리트 슬라브 단층으로 35평 규모의 회관을 건축하게 되었다. 20여년이 지나니 건물이 낡아 1994년도에 제주시청의 지원과 자부담으로 현대식 건물로 1층 40평을 건축하고 1996년에 2층 40평을 증축하여 다용도로 편리하게 주민들이 이용을 하고 있다.

옛 연미마을회관(1975년~1994년)
옛 연미마을회관(1975년~1994년)
옛 회사집이 있었던 회사거리
옛 회사집이 있었던 회사거리
자료사진: 데이비드 네메스 ㅣ 출처: 제주학센터
자료사진: 데이비드 네메스 ㅣ 출처: 제주학센터

시내버스 개통

연미마을은 중산간에 위치해 있어 교통이 매우 불편하였다. 연미마을에 시내버스가 처음 운행하게 된 시기는 1972년으로, 당시에는 시내에서 오라일동을 거쳐 연미마을의 옆 마을(사평마을)까지만 버 스가 운행하였다. 그래서 연미마을에서는 동회장(고찬종)과 유지 몇 분이 시청을 방문하여 교통담당 에게 버스노선을 연미까지 연장해 주길 애원하여 연미마을 회사거리까지 운행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시내버스가 연미마을 회사거리에 왔을 당시 마을회에서는 무사고 운행을 기원하며 제물을 준비하고 버스 안에서 고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는 연동을 경유해 정실 마을까지 연장되었다.

자료사진: 이토아비토 ㅣ 출처: 제주학센터
자료사진: 이토아비토 ㅣ 출처: 제주학센터

공동수도 개통

옛날 수도가 개통되기 이전에는 마을 주민들은 구릉(봉천수) 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연미마을은 가구 수가 많다보니 구릉도 곳곳에 많아 10곳에 이르고, 생활용수로 쓰던 연못도 8곳이나 됐다. 열안 지오름 남쪽에 생수 터가 있어 행정당국에서 이곳을 상수도로 개발했다. 열안지오름에서 모오마을, 사 평마을, 연미마을, 월구마을, 연동마을까지 수도관을 매설하고 1965년부터 수돗물 공급이 시작되었다.

 

섯동네는 회사거리와 회관부지 동남쪽코너 두 곳, 동동네는 웃동네 가는 삼거리와 종대거리 두 곳, 웃 동네는 ᄆᆞᆯ방아터에 각각 공동수도가 설치되어 주민들이 깨끗하고 시원한 물을 마시게 되었다. 이때부 터 주민들의 구릉물 이용도 점차 줄어들었다. 몇 년 뒤에는 각 가정으로 수도가 보급되면서 물 이용이 매우 편리해졌다. 더 이상 구릉물을 이용하는 사람도 없이 방치되다보니 마을의 구릉과 못들은 시나브로 매립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연미문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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